독서 리뷰

<밝은 밤>

[문뻡볻] 2023. 1. 2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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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만 보다가 종이책, 그것도 소설책을 오랜만에 보게 돼서 낯설었다.

역설적인 제목처럼 내면의 어둠이 조금씩 걷혀 나가는

그런 내용이 아닐까 하는 기분으로 인물들을 만났다.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삼천이), 할머니(영옥), 엄마(길미선), 그리고 

'나'(지연)에게 오기까지

여자로서의 삶이 대물림되며, 평탄치 않은 그들의 인생이

역사의 페이지를 한 페이지씩 넘기는 것 같았다.

 

할머니와 어렸을 적 한 번 본 뒤로 만나지 못하다가

이혼을 하고 직장을 옮긴 곳에서 할머니와 재회한 지연.

가까운 사이라기엔 남같고, 남이라기엔 가족이라는 연으로 묶인 이들이 

누군가에겐 상처를 주고 누군가에겐 상처를 받으며

할머니는 그 시대를, 과거를 지연에게 들려주었다.

 

생각보다 그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건 사람 사는 얘기라서인지,

할머니가 전기수처럼 말씀을 잘하셔서인지

이래서 애들이 책 읽어주는 걸 좋아하나 싶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타인의 편견과 차별 속에 마음을 열지 못한 삼천이(증조할머니)가

친구인 새비 아즈마이와 함께 하면서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나갔다는 점이 감동이었다.

지옥같은 현실에 적어도 한 명만은

오로지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 일일까.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어서 둘의 관계가 꽤나 애틋했다.

내가 가장 감정이입하며 공감한 부분이기도 했다.

우정은 때론 엄청난 힘을 발휘해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하는 거니까. 

 

 

 

"엄마가 새비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가장 많이 했던 얘기는 이거였어.
새비가 나를 얼마나 귀애해줬는지 몰라.
새비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몰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새비아주머니를 기억하는 엄마의 표정은 늘 환했어.
꼭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런 상처 같은 거 받지 않아도 됐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는 삶을 택하셨겠네요."
"그래. 그게 우리 엄마야."

 

 

그리고 엄마와 딸의 관계성.

자기만의 입장이 있고, 엄마로서의 역할과 상처도 분명 존재했겠지만

그러면서도 딸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다는 점에선 엄마는 나이를 먹은 어른일 뿐

사실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결핍된 아이가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했다.

상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에 가깝지만,

적어도 들어주는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엄마가 되어본 적이 없는 나로선 아직까지 딸의 입장을 옹호하는 쪽이다)

 

직면하기 무서운 문제라서인지 회피하고

마냥 묻어둔 그들의 속마음은 썩어 문드러져 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그런 무의미하고 낙관적인 제안이

정말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말을 떠올리게 한다.

잊었다 또는 극복했다기보다는 그 아픔을 기억하되 조금씩 나아간다고 해야할까.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작가는 이래서 하나보다 싶었다.

괴로움, 고통, 슬픔, 분노와 원망 등등으로 가득찬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때 

이 문장이 유독 눈에 밟혔다. 정말 이랬음 싶어서.

내가 원한 문장,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을 그런 말을

작가는 마치 내 마음을 읽은 양 이렇게 멋지게 써주다니.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나는 위로받았고, 같이 슬퍼하며 울었다.

인물들의 관계에서 나와 친구를 대입하여 평행세계에 있는 듯하기도 했고,

엄마와 딸의 애증도 나와 밀접하게 닿아 있어서 더욱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아가려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 사는 것 참 다 똑같구나, 다를 게 없구나 싶어 안도했다.

 

소설 말미에서 나(지연)는 그토록 원하던 직장으로 이직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할머니와 보낸 시간과 나누었던 대화들은

지연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또한 이혼이 가져온 감정적 결과에 휘둘리는 나약하고도 작은 자신을 직시하고, 인정하며

한 발 한 발 점점 밝아오는 밤을 맞이한 걸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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